순천교회사
미국 남장로교회가 한국에 선교를 시작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사람은 언더우드이다. 언더우드는 1891년 첫 번째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가게 된다. 이 첫 번째 안식년 여행에서 언더우드는 1893년 2월까지 약 2년간 미국에 머물렀는데, 오히려 한국에서의 활동기간보다 훨씬 강도 높은 순회연설, 모금활동, 한국선교사 파송준비등의 사역을 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선교 상황을 자세히 보고하고, 한국이 지닌 역사적·문화적 특성을 알리며, 한국 선교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설득력 있는 연설을 해 나가는 데 진력했다. 그는 교회의 설교, 대학이나 신학교의 집회, 학생자원운동의 모임, 면려청년회, 각 교단의 총회, 그리고 사교 클럽이나 여러 단체의 오찬회, 만찬회 석상등 모임의 성격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설을 하였다. 특히 언더우드는 시카고의 맥코믹신학교와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열린 해외선교를 위한 신학교 동맹에서 한국선교보고회를 가졌다. 마침 내슈빌대회에는 한국인 최초 남감리교인으로 당시 밴더빌트 대학에서 유학중이던 윤치호도 참석해서 한국 선교를 강력하게 호소했다. 언더우드는 이 자리에서 선교 처녀지 한국에 대해서 환등기를 보여주고 소개하면서 학생들을 초대했다. 한국은 어떤 방해 요인도 없이 활짝 열린 곳이고, 사회적 변혁기에 놓인 한국인들은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윤치호는 모국을 복음화 시켜 달라고 신학생들에게 간절히 요청했다. 언더우드와 윤치호의 요청은 이들의 마음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오랫동안 ‘은자의 나라'으로 불리던 한국에 대해 좀 더 배우고 싶은 충동을 일으켜 놓았다. 그리고 강연을 들은 남장로회 소속 신학생들이 감동을 받아 한국 선교에 자원하게 되었다.
테이트는 곧 남장로교회 해외선교부에 한국 선교를 신청했다. 하지만 미국 남장로교회 해외선교부는 “한국과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할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음을 물론 그 의도마저 가지고 있지 않다.”는 답신을 보내왔고, 한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 신청서를 내 볼 것을 권유하였다.
내쉬빌 집회에 자비를 들여 참석했었던 존슨은 한국 관련 책 2권을 전킨과 레이놀즈에게 빌려주었다. 그들은 언더우드가 자신들의 신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 준비를 도맡았다. 그리고 1891년 12월 레이놀즈와 존슨은 전킨과 함께 남장로교회 해외선교부에 한국 선교를 정식으로 신청했으나 이들의 신청도 역시 테이트의 경우와 같은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러나 한국 선교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그들은 선교부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교에 대한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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