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교회사

    02. 한국장로교회 독노회(1907)
    2023-06-02 15:01:45
    김석수
    조회수   326

     

     한국장로교회는 사경회와 부흥회가 결정적인 교회 조직의 영적디딤돌 역할을 하였다. 1907년에 접어들어 한국인 장로가 47, 조사가 160명으로 늘어났다. 1901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는 평양에 신학교를 설립하여 장래 한국교회 교역자의 양성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졸업을 앞두고서 한국교회 독립을 계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로교 헌법에 따르면, 한국 목사는 선교 본국 노회의 한 회원으로 안수하든가, 아니면 한국의 독립된 노회에서 안수를 받게 하든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선교국에 있는 교회당국자들이 한국 노회의 조직을 허락하였다. 내한선교사들은 본국 노회의 소속 회원자격을 보유하면서, 한국 노회 일원으로도 참가하였다. 한국 노회의 조직을 목표하고 장로교 공의회는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공의회 기구 안에는 회장, 순서위원, 신앙고백기초위원들이 임명되어 있었다.

     

     1907917일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서 장로교 최초의 노회인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창립되었다. 이때 참석자는 4개 장로교 선교부(미국 남·북 장로교, 호주 장로교, 캐나다 장로교)의 목사 38명과 한국인 장로 40명이었다.대한예수교장로회는 서양 장로교회들로부터 독립한’(independent) 한국장로교회를 의미하는 ()노회는 어떤 점에서는 한국장로교회의 진정한 생일이라고 볼 수 있다. 1907년 정미 7조약 체결로 사실상 주권과 국권이 일제에 강점당한 절망적인 상황이어서 교회는 비록 완전한 권한이 이전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외국 선교부 소속에서 벗어나 독립된 노회를 조직하였다는 점은 큰 의의가 아닐 수 없다.

     

     1907917일 오전 9시 독노회가 개최될 때 작년 공의회 회장이던 벨 선교사가 사도행전 18절에 우리 주 예수께서 마지막 분부하신대로강도한 후에 게일 선교사가 떡을 가지고 축사하고 장로들과 나누며, 벨 선교사는 포도즙을 가지고 축사하고 장로들과 돌려서 성찬 예식을 거행했다. 당시 공의회 회장이던 마펫 선교사가 노회 취지를 설명했다. 이 독노회에서 12신조의 대한장로교회 신경을 채택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규칙을 제정하였다. 규칙에는 제1조 교회(2), 2조 예배절차(1), 3조 직원(6), 4조 교회의 치리(5), 세칙(6)으로 구성되어 있다.

     

     4개 장로교 선교회와 그곳 총회의 인준으로 설립된 독노회에서는 신학교 제1회 졸업생 7명 곧 길선주, 방기창, 서경조, 송인서, 양전백, 이기풍, 한석진을 목사로 장립했다. 7명의 초대 한국인 목사를 안수하여 장로교회의 한국인 성직자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세계교회와의 유대를 실현하기 위하여 만국 장로교 연합공의회에 대하여 독노회의 조직을 통치하고 그 명부를 기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독노회의 초대 임원은 노회장 마펫 선교사, 서기 한석진, 부서기 송인서, 회계에는 리 선교사가 선출되었다. 한국장로교회는 독자적 치리 조직을 가진 조직교회로 태동하였다. 민경배는 1907년을 한국 교회사의 하나의 전환점으로 보았다. 타오른 신앙의 불길을 보존하고 포괄하고 껴안아서 계속 그 힘을 조절 방출하되 계속 가꾸어야 할 메커니즘이 필요한 데, 교회 조직은 그 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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