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교회사

    05. 미국 남장로교의 한국선교(2)
    2023-06-23 15:48:33
    김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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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23 7인의 선발대 매산등.jpg

     

     

    그들은 언더우드에게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버지니아의 주요 교회에서 한국 민족과 그들의 관습에 관한 환등 강연을 해 줌과 동시에 한국 선교의 필요성을 강력히 역설해줄 것을 요청했다.  언더우드는 각 지역에 있는 교회는 물론 신학교, 노회 그리고 각종 대회 앞에서 한국의 형편과 선교의 중요성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교인들의 마음속에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해야겠다는 생각이 점차 일어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당시의 정책을 바꾸기 위해 교회잡지에 투고를 했다.  18922월에 선교 잡지 The Missionary왜 우리는 한국에 가기를 원하는가"라는 글을 실어서 한국 선교에 대한 열정과 분위기를 진작시켰다.  또한 레이놀즈와 존슨은 매일 같은 시간을 정하여 기도했다.  매일 오후 3시에 기숙사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마음을 쏟아 바치면서 한국 선교의 길을 열어주시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이때 이들은 적어도 2년 안에는 분명히 기도의 응답이 있을 것을 믿었다고 후에 레이놀즈는 술회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두 달 후 미국 남장로교회의 해외선교부로부터 “8월에 떠날 준비를 하라는 전보를 받게 되었다.

     

    언더우드는 북미의 다른 친구들의 협력과 자신이 애써 모은 거금 3,000달러를 마련하고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를 운영하는 형 프레드에게 부탁해 2,000달러를 마련해 총 5,000달러를 한국선교를 위해 써 달라며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에 선교기금으로 보냈다.  이는 두 명의 선교사가 2년간 선교할 수 있는 경비였다. 또한 뉴욕의 존 언더우드가 25,000달러를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위원에 보내왔다. 또한 당시 남장로교의 선교지의 하나였던 그리스 선교가 그리스 정부의 방해로 중단되는 사건이 있었다.  해외선교부는 그 대안을 찾아야 했다.  선교 지망자들의 열성적인 노력에다 선교헌금이 들어오자 더 이상 한국선교를 지연시킬 명분이 없어졌다.  결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는 한국선교를 결정하였다.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는 맥코믹 출신인 테이트를 비롯하여 그의 여동생 테이트, 그리고 리치몬드 소재 유니온신학교 출신인 레이놀즈와 부인 볼링, 전킨과 부인 리번, 데이비스 등 ‘7인의 선발대가 선정되었다.  1892113일 이들은 제물포 항에 도착하였고 북장로교 선교사였던 마펫등의 환영을 받았다. 이들 남장로회 선교사들은 먼저 와 있던 북장로회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서울에 주택을 마련하였고, 레이놀즈를 회장, 테이트를 회계, 그리고 전킨을 서기로 한 남장로교 선교회를 공식적으로 조직하고 한국선교를 시작했다.  1893128, 선교 협력기구인 선교회연합공의회를 조직하였다. 이 공의회에서 남장로회의 선교 지역으로 충청남도와 전라도가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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